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목을 베라고 상소하였으며,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 활약하였다. 1909년 친일단체인 일진회가 한일합병론을 제기하자, “이 역적들을 성토하지 않는 자 또한 역적이다”라고 토로하면서 매국노를 규탄하는 성토문을 작성하여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기도 하였다. 3.1 독립운동 이후 활발한 독립운동을 하였으며, 해방 후 성균관 대학을 재건하여 후진을 양성하다 1962년 영면하였다.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수여되었다.